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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중앙일보>
위안부 합의에 대한 나의 생각
나의 생각은 결과적으로 부정적이다. 합의문의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의 의견을 물어보지도, 정보를 주지도 않고 한국 정부가 독단적으로 처리하였다. 합의한 내용이 정말 진심 어린 사과인지 의심스러우며 합의문 자체가 모호하여, 나중에 위안부 문제를 부정할 가능성이 크다. 12월 28일 위안부 협상 시 첫 번째 합의 내용에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하게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이런 관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 있는데, 여기서 핵심은 '군의 관여'이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군의 개입을 부인했던 아베나 일본 우익의 완강한 태도를 생각하면 인정한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무엇에 대한 관여인지가 빠져있다. 위안부 모집과 동원, 위안소 운영, 위안소 안에서의 비인간적 처우 등 어디에 방점을 두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결국 위안부로 끌려온 뒤의 군의 관여라고 하면 기본 주장과 다를 바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이렇게 가장 중요한 책임 범위가 모호하다
보니 사과가 아닌 사과인 셈이다. 또한 위안부 할머니들이 20여 년간 투쟁해온 역사를 10억 엔에 팔아 치우고 그조차도 소녀상 철거 조건이라면 최악의 시나리오가 아닐 수 없다. 단순히 위안부 할머니들의 연세가 높기 때문에 이 사안을 빨리 결론내기 위해 이 협상이 옳다고 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투쟁과 맞바꾼 것이 외로움이다. 김복동 할머니는 14세에 위안부에 끌려가, 5년 동안 광동, 싱가폴, 인도네시아등 끌려다녔다. 해방 뒤 남편이 죽고 후유증으로 아기를 낳을 수 없게되었다. 92년 1월에 정대협에서 정신대 신고를 듣고 친언니에게 물어보았더니, 친언니는 조카들을 봐서라도 하지말라는 답변으로 되돌아왔고, 신고 이후 언니와 연락이 끊기고, TV에 출연하게 되면서 조카들과도 연락이 끊켰단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현실인가. 현 90세이시고 아직도 투쟁중이시다. 근본적인 문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았는데, 일본과 정부는 진일보적 협상이라며 자화자찬하고 있는 상황이다. 위안부 협상 타결에 대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통보조차 하지 않았으며, 제 1외교부 차관 임성남은 연휴라 통보하지 못했다라는 어처구니 없는 대답까지 했다. 한미일 동맹관계를 위해 일본 외무성의 숙원 사업인 안보리 상임 이사국 진출을 위해 협상했다고 본다. 일본은 10억엔으로 국제적인 눈치를 벗어나게 되었고, 결국 우리나라는 아무것도 얻지못한 강대국들에게 쩔쩔 매는 상황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합의라고 볼 수 있다.
위안부와 가부장제
위안부를 가부장제로 연결해서 분석해보면 가부장제 문제의식은 여성의 주체성을 부정하고 여성에 대한 성적 인권 침해를 가부장제 아래서 남성 간에 벌어지는 재산권 싸움으로 환원한다 그리고 이것이 야 말로 피해자에게 침묵을 강요해온 이중의 범죄 의 원인이다 자기 민족의 여자는 자기 것이며 그 여자가. 다른 민족에게 능욕당하는 것은 남자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이라는 전제가 있고 만약 그렇다 면 그것은 충분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입을 다물게 하는 압력이 되었을것이다. 피해 여성의 고발에 대해 초기에는 민족의 치욕을 밖으로 드러내지 말라는 대단히 가부장적인 억 압의 소리가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일어났다 첫째 성적 능욕을 당한 것은 여자의 치욕이라는 유교 적인 도덕관에 기인한 것이다 둘째 자기 민족 여자의 정조를 지키지 못했던 한국 남성의 칠칠치 못함을 뭇사람 앞에 드러냈다는 점이다 셋째 남성에게 망신을 주는 여성의 고발을 막지 못했다는 면목을 추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 여성의 정조란 남성 재산의 하나로서 그 재산권 침해에 대해 한일 양국의 가부장제 사이에서 이해가 계산되어 이야기되었을 뿐 여성의 인격이나 존엄은 조금도 고려되 지 않았다 위안부 문제가 등장한 이후 한국에서는 민족적 자존심이 상처받는다는 이유로 일본에 대한 배상 요구에 반대하는 의견이 폭넓게 공감을 얻었다